이병철 회장은 당시 전쟁 후의 대한민국 상황을 돌이켜보았을때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무역도 의미있었지만, 필수재를 생산하는 경공업을 통해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가 다음에 필요한 것임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그 가설은 이미 무역을 통해서 갖춘 튼튼한 체력을 바탕으로 확장할때 실현되었다.
사실 그것은 젊은 날의 실수에서 배운 교훈을 되새긴 것이기도 했다. 그는 첫 창업 초기 정미업에서 거둔 성공을 바탕으로 레버리지를 극도로 활용하며 운수업과 부동산업으로 빠르게 확장하며 2백만평의 옥토를 보유한 젊은 거부(현 시대로 보면 영앤리치)가 되었지만 이자율의 급격한 상승으로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그 이후로 그는 축적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된다.
요즘 많은 스타트업이 겪는 고난은 이병철 회장이 일찌기 깨달은 교훈과 달리 튼튼한 본진보다 빠른 확장에 집중한 것에서 근본적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사업의 본질은 고객의 창조에 있고, 그것을 위해서는 고객의 만족을 더 시켜내야 하는데 사업 초기 가설들을 현실에서 부딪히다보면 한계를 느낄때가 많다. 그때 유혹이 시작된다. ‘트래픽을 일단 더 모으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저 회사를 사서 붙이면 말이 되지 않을까? 투자금을 일단 끌어오면 대마불사가 되지 않을까?’ 등의 유혹이 그것이다.
출처: 이데일리 / [코로나發 창업생태계 위기]①자금조달 막힌 스타트업 "생존 자체가 힘들어"
하지만 불행히도 자유시장경제에서 경쟁사들도 다들 훌륭한 사람들이다. 따라할수 있으면서 일시적인 경쟁우위는 길어야 2년이면 비슷해진다. 특히 소프트웨어나 디자인 등 단순 디지털 기반의 경쟁우위는 더욱 그렇다. 한계비용이 0에 수렴하기 때문에 될때까지 복제하며 1위가 쏟은 연구개발과정을 쉽게 따라할수 있다. 하지만 고객을 모셔오기 위해서는 큰 차이의 가치를 제공해야하기 때문에 단순 시도로는 그 시간을 벌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전부 비슷해진 금융 앱의 UX는 그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고객을 모으지못하고 스러져가는 와중에 시중 금융사는 역대 최고의 수익을 거뒀다.
문제는 본질에 있다. ‘우리의 고객은 누구인가? 그들은 얼마나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가? 그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은 왜 우리 서비스를 선택하는가?’ 등의 멋진 질문에서 출발한 사업이 투자자와의 약속때문에, 초기 가설과 거리가 먼 시장에서 몇 가지 조건만 결합되면 잘 될것 같은 상상때문에 우리의 고객과 다른 고객, 작은 시장, 우리의 고객이 선택한 것과 다른 가치의 서비스로 변질되어가며 사업은 힘을 잃는다. 그리고 스타트업은 오랜 세월 힘을 비축한 일반 기업과 달리 그것을 버틸수 있는 체력이 없고, 요즘과 같은 빙하기에는 더욱 그렇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가설이 아니라 증명이고, 확장이 아니라 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