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벗의 원리: 성공적인 방향 전환을 이뤄낸 IT 기업들에게서 배울점

2023년 06월 04일 | CEO story, Culture

방향전환을 의미하는 피벗(PIVOT) 은 원래 농구에서 한 발을 축으로 붙여두고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 날에는 데이터 결과값을 기반으로 표를 만들고 분석하는 엑셀의 피벗테이블 뿐 아니라 공학적 궤도의 수정이나 사업 전환에 이르기까지 방향을 바꾸는 영역에 폭넓게 쓰이고 있다.

최근 바드가 공개되자 알파벳(구글)의 주가는 급상승하였다. 검색엔진 강자였던 구글은 chatGPT 등의 생성형 AI 시대 기선을 제압당하고 야후처럼 보인다는 평을 받았었지만, 바드 공개 이후 그동안 받은 시장의 실망감을 우수한 성능과 기술로 극복하며 시장의 신뢰를 다시 얻고 있다.

그런데 사실상 GPT 시대를 촉발시킨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런 혁신 이미지를 구글보다 훨씬 잃고 있던 공룡이었다. 내부 총질로 대변되는 경쟁문화나 고집불통의 이미지를 샤티아 나델라 집권이후 클라우드와 오픈소스로 변화시키며 70년대 기업이 다시 시대의 주역이 되었다.

반면, 애플은 사실 엄청난 데이터를 이미 확보하고 사용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지만 AI언급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매킨토시 이후로 망할뻔한 회사를 팬보이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아이팟(음악), 아이맥(전문가용 PC), 아이폰(스마트폰) 세계로 확장하였다.

이 회사들의 공통점은 바로 강점을 기반으로 변화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피벗의 핵심은 구글이 보여준 검색엔진 기반의 확장, MS가 시도한 강력한 시장 점유율 기반의 신사업, 애플이 집착하는 고객 통합 경험 선도로 볼 수 있듯 스스로의 강점을 기반으로 변화를 할 때 비로소 승자가 된다.

많은 스타트업들은 과거 내가 그러했듯이 기존 사업을 접고 새로 시작하는것을 피벗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피벗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피벗은 강력한 한 발을 축으로 방향을 옮기는 것이므로, 그게 없다면 그냥 새로운 스텝에 불과하다. 안정적인 축이 있다면 방향을 옮긴 후의 대처가 가능하지만, 그게 없다면 여전히 어느 시장에서든 균형잡기도 급급한 초심자일 뿐이다.

브라운백에서 국내 커피 원두 시장의 디지털화에 처음 나섰을때부터 오피스 커피 구독 사업으로 진출하기까지 5년 이상의 기간이 걸렸다. 그 사이 우리는 전국 곳곳 2천여개가 넘는 국내 카페들의 까다로운 요청을 처리하며 커피 산업의 도메인을 공부했다. 70만건이 넘는 주문을 온라인으로 받았기 때문에 제조 데이터와 융합해서 분석하기도 좋았다. 국내 커피 소비자의 취향이 이제 인스턴트를 졸업할때가 되었음을 누구보다 빠르게 보고 국내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고소하고 쌉쌀한 커피를 확인하며 정량적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

블리스가 처음 오피스 커피 구독 서비스를 할 때엔 무한 샘플링을 하기도 했다. 커피 맛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새로운 원두를 가져다 주었다. 원두에 대한 준비와 조정 역량이 다행히 커피전문점 수준에 맞추어 되어있어서 가능하기도 했다. 아마 당시 타사의 물건을 단순히 갖다 주는 유통의 역할만 했더라면 초기 고객의 니즈를 찾는 제품-시장 적합도(Product Market Fit, PMF)를 찾는데 훨씬 오래걸리거나 지표가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 우리는 커피 구독 사업의 믿을 수 없는 99% 고객유지율(Retention Rate)과 현금흐름이 꾸준히 창출되는 사업모델에 빠져들었지만, 실상은 그것은 피벗이었다.

시장은 인스턴트에서 아메리카노 시대가 되었지만 사무실은 그렇지 못했다. 사무실에 커피를 제공하는 플레이어들이 여전히 자판기 시절 형님 영업 경쟁력으로 승부할때, 디지털과 커피 산업에 대한 이해를 높여왔던 지점을 축으로 확장한 것이 우리에게 결정적 방향 전환이 된것이다.

뚜렷한 강점이 없다면 시장을 리딩하기 어렵고, 리딩해도 부가가치를 획득하기 어렵다. 수많은 플랫폼 회사들은 우선 고객을 모으고 나면 규모의 경제로 비용을 절감하고, 추가 수익 모델을 얹겠다고 하지만 그 사업이 정말 좋다면 경쟁자들이 구경만 할 리 없다. 강점없는 회사가 하는거라면 대단한 허들도 없는데 뭐 그게 어렵겠는가. 플랫폼이란 책상 하나, 전화 하나만으로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손익이 계산되지 않는 사업이 앞으로 잘 되는 경우란 극히 예외적인 경우 뿐이다.

나는 과거 스마트폰 케이스와 디자인을 매칭하는 플랫폼 사업을 하던 시절, 고속성장에도 불구하고 그런 타이밍 사업이 사실 99% 이상의 운에 기대는 것이란 것을 깨닫고 미련없이 접었다. 고객을 강력하게 사로잡지 못하는 사업은 언제든 스러져갈 수 있다는 것을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당시 비슷한 모델을 하던 회사들의 쇠락을 보며 확신했다.

구글이 압도적 검색엔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바드가 무서운 것이다. MS의 오피스를 전세계가 쓰고 있기 때문에, 생산성 SaaS들은 코파일럿 앞에 흔들리는 것이다. 우리는 고객이 떠나지 않을 무엇을 갖고 있는가? 뾰족함이 없다면 피벗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해야한다. 축이 없는 피벗은 공허하다.

다른 게시물 더보기

편리함의 승리 : 쿠팡, 알리 그리고 당신의 선택

편리함의 승리 : 쿠팡, 알리 그리고 당신의 선택

쇼핑하면 대형마트를 의미하던 그 시절, 귓가를 채우던 이마트 배경 음악은 수능 금지곡과 선호 노동요 1위였다. 그 즈음 옥션 지마켓은 곧 온라인 쇼핑이었고 사람들은 전자상거래에 눈뜨기 시작했다. 분명 그들은 업계와 고객의 선택을 선점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진심을 찾아서: 숨은 목적의 심리학

진심을 찾아서: 숨은 목적의 심리학

43세의 나이로 췌장암 선고를 받았을때, 랜디 포시 교수는 행복의 길을 오르고 있었다. 그는 카네기멜론대학에서 컴퓨터 과학 교수로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등에 기여하며 테뉴어 심사를 앞두고 있었고, 아내 재키와 세 아이와 사랑이 가득한 가정에 살았다. 불행히도...

시간을 다스리는 자 –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지혜

시간을 다스리는 자 –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지혜

한 노교수가 지방 강연차 김포공항에서 수속중이었다. 그런데 940번을 비행기를 탄 그가 발권이 되지 않아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알고보니 시스템상 그의 나이가 '1세'로 나와서 보호자 없이는 발권이 되지 않는게 아닌가. 사실 그는 1920년 생으로 100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