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내 맥주를 그가 가져갔다

2020년 12월 27일 | CEO story

C 브랜드의 무알콜 맥주를 알게 된 것은 신세계였다.
맛도 좋고, 가격도 저렴해서 운전에도 지장이 없는, 그야말로 훌륭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브라운백 커피 성장세미나에서 먹으려고 시원하게 해둔 냉장고의 그것이 없어진게 아닌가.
회사에 자유롭게 먹을수 있는 술이 여럿있는데 왜 딱 표시해둔 내 것이 없어졌단 말인가. (브라운백의 멤버용 냉장고에는 규칙이 있다. 자기 음식에는 이름을 적어놓고 공용 물품에는 적지 않는 것이다.)

궁예의 눈으로 범죄자를 찾으려고 한 순간 해맑은 표정으로 내 맥주를 마시고 있는 A멤버와 눈이 마주쳤다.

‘저 이것 좀 마실게요~~’

그는 맥주와 나쵸칩을 사랑하는, 그리고 내가 종종 거리낌없이 나쵸를 얻어먹은 바로 그 멤버였다.

도둑맞은 마음이 너무나 즐거웠다.

회사의 문화는 어떠해야 하는가.

정답이 있을리 없다. 시대마다, 구성원마다, 산업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조직일수록 리더의 색깔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백년이 넘은 회사인 GE도, 좋은 문화의 회사로 손꼽히는 구글도, 멋진 스타트업인 에어비앤비도 지향하는 공통된 방향은 있다.

그것은 ‘무엇이든 이야기해도 되는 문화’이다. 심리적 안정감 또는 투명함 Integrity 등으로 표현되는 이것은 그 조직이 얼마나 건강한지를 보여준다.

누군가 내 냉동 도시락을 가져가고 다른 간식을 포스트잇과 함께 둔 것을 발견할 때, 며칠되지 않은 인턴도 내 반박 의견에 주저없이 왜 그런 생각을 했고 자신의 의도는 뭐였는지 회사 전체를 대상으로 설명할때, 나도 모르는 내 사소한 습관이나 행동을 회사 메신저에 이야기하며 놀리고 웃을때, 반드시 내가 대답해야하는 매주 열려있는 익명 질문 제도인 ‘오픈톡’에 민감한 질문이 들어와 있을때, 그런 건강함이 싹트고 있는것을 느낀다.

리더는 외롭기 쉽고, 다가가기 어렵다.
그 누구보다 어렵고 날카로운 리더였던 나를 변화시킨것은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 매일 마주치는 동료에게 안부 물어보고 먼저 인사하기
– 간식이든 뭐든 불쑥 불쑥 나누어 먹기
– 일, 삶, 관계 등 각자 신경쓰는 일들을 평소에 자주 물어보기
– 감사와 인정의 표현을 작은 성과와 약속에 아끼지 않기
– 어떤 질문이든 있는 그대로 대답하기
–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기

등의 매일 마주치는 일상의 작은 행동들이었다.
공구로 누군가 닭가슴살을 사자고하면 제일 먼저 손들었고, 새로운 뉴스를 공유하면 의견을 덧붙였다.

날을 잡고 갑자기 ‘저는 괜찮으니 다 이야기해보세요’라고 하는 방식으로는 서로 다른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열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우리의 키가 하루 아침에 자라는게 아닌것처럼, 얼음이 한 순간에 녹아 강이 되지 않는것처럼, 이런 건강한 문화는 모두의, 특히 리더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정과 신뢰는 인스턴트로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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